사라진 기억
넓은 시내의 징검다리를 건너 둑 넘어 느티나무 그늘을 지나면 공수평이 나온다. 그곳에 사는 중학교 동창의 집에 가본적 있다. 한 번인가? 아니 두 번 쯤? 그래서 얇은 기억 한 편만 남아 있다. 그래 그 때 그 친구의 이름이 문장렬이었다. 그 친구의 기억도 아련하니 이제 없어진 그의 고향마을을,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
공수평의 모습. 미처 철거하지 못한 집이 보인다.
나는 중학교에 가기 위해내가 살던 신풍에서걸어서, 혹은 자전거를 타고 4km를 가야했다. 도로는 비장이어서 자동차가 지나가면 고스란히 먼지를 뒤집어 써야 했다. 그래서 자동차가 오면 바람 방향을 찾아 길의 왼쪽과 오른쪽을 선택해야만 했다. 그 아름다운 추억, 등하교길에 친구들과 웃고, 싸우고 하던 그어느 자락에 돈지 마을이 있었다. 신작로에서 길게 늘어진 길을 따라 다리를 건너면 대나무에 감춰져 마을 안쪽이 보이지 않았다.
철거된 마을은 그 모습 또한 변해 있다. 돈지마을
건동마을은 새로운 도로가 뚫여철거된 모습마져 보이지 않는다.얼마되지 않은 산쪽에 위치한 마을의 자취는 물에 잠기지 않아 다행이기도 하다.
건동마을 터 위에 놓인 새로 난 도로의 가드레일이 보인다. 아래쪽 도로는 옛길
신풍에서 중학교까지의 중간, 즉 십리중 오리가 덕산리라고 했다. 덕산리는 버스가 다니는 도로에서 1km정도 걸어 들어 가야했다.어린 시절 마을에가 본 적이 있었는데 마을은 매우 넓고 컸다. 신풍과 비슷할 것도 같았다. 마을입구에 논과 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마을의 보호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시냇물은 강을 방불케 했었다.덕산리를 조금지나면 아장사리터가 있었다. 학창시절 우리는 이곳을 매우 무서워 했다. 낮에도 혼자 지나갈 때면 그곳을 빨리 지나치기 위해 뛰어 다니곤 했었다.
멀리 잡초에 덮인 덕산리의 모습이 보인다.